명시 정원

세월의 갈피 / 권대웅

금종 2022. 12. 18. 08:31

세월의 갈피 / 권대웅

오래된 장롱을 열었을 때처럼

살다 보면 세월에서 문득

나프탈렌 냄새가 날 때가 있다

어딘가에 마무리하지 못하고 온 사랑이

두고 온 마음이

쿡, 코를 찌를 때가 있다

썩어 없어지지 못한 삶이

또 다른 시간으로 자라는 저 세월의 갈피

들판에는 내가 켜놓은 등불이 아직 깜박이고

정거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눈물들

아 사랑들

지붕을 넘어 하늘의 계단을 지나 언덕들

숨어 있던 계곡들이

일제히 접혔다 펴지며

붕붕 연주하는 저 세월의 아코디언 소리들

인생의 노래가 쓸쓸한 것은

과거가 흘러간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살면서 나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골목을 돌아설 때 불쑥 튀어나오는

낯익은 바람처럼

햇빛 아래를 걷다가 울컥 쏟아지는

고독의 멘스처럼.

 

-좋은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