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정원

까치소리/신경림

금종 2023. 3. 26. 08:49

까치소리/신경림

간밤에 얇은 싸락눈이 내렸다

전깃줄에 걸린 차고 흰 바람

교회당 지붕 위에 맑은 구름

어디선가 멀리서 까치 소리

싸락눈을 밟고 골목을 걷는다

큰길을 건너 산동네에 오른다

습기 찬 판장 소란스러운 문소리

가난은 좀체 벗어지지 않고

산다는 일의 고통스러운 몸부림

몸부림 속에서 따뜻한 손들

뜰 판에 팽개쳐진 이웃들을 생각한다

지금쯤 그들도 까치 소리를 들을까

소나무숲 잡목숲의 철 이른 봄바람

학교 마당 장터 골목 아직 매운 눈바람

싸락눈을 밟고 산길을 걷는다

철조망 팻말 위에 산뜻한 햇살

봄이 온다고 봄이 온다고

어디선가 멀리서 까치 소리 

 

-좋은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