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정원

산수유가 있는 새벽 /이건청

금종 2023. 4. 7. 08:40

 

산수유가 있는 새벽 /이건청

저 새를 따라가면

아버지를 보리라.

해 저물어 잎도 가지도 지워진

참나무 숲을 지나고,

불 꺼진 절간을 스쳐갈 때쯤

풍경 소리에 섞여 내리는

눈발도 보리라.

늦은 아버지 음성이

장지문을 건너와

늦도록 꿈결을 스치다 잦아들면

어린 날의 꿈자락엔 산수유 노란 꽃이

무리 져 피어나곤 했었다.

……이제, 귀도 눈도 어두워진

이순의 아들이

불면의 밤을 지내고 아침

창을 열면

산수유 늙은 가지가

말라붙은 산수유 열매들을

매달고 있는 게 보인다. 

 

-좋은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