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보드가야
콜카타에서 하룻밤 기차를 타고 제가 도착한 곳은 인도 비하르 주의 가야(Gaya)입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이 도시에 온 이유는 불교 성지를 방문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야 역에서 오토릭샤를 타고 30여분, 곧 보드가야(Bodhgaya)에 도착합니다.
보드가야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출가한 이후 혹독한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6년의 고행 끝에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죠. 석가모니는 육체를 괴롭히는 것만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겠다 생각하고 고행을 멈춥니다.
태국이나 스리랑카, 미얀마처럼 불교의 영향력이 강한 국가들은 그만큼 넓고 화려한 사원을 세웠습니다. 일본은 거대한 불상을 세웠고, 대만 역시 사원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고려사'라는 절을 세웠고, 지금은 '분황사'라는 새로운 사찰을 건설 중에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성스러운 공간을 찾아 온 불교 신자와 수행자를 따라 마하보디 사원 옆을 걸었습니다. 탑 주변을 걷는 사람들. 자리에 앉아 한참이나 탑을 바라보는 사람들. 마하보디 사원 안에는 석가모니가 수행했다는 보리수 나무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 아래에서 불경을 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불교의 승려들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불교 신자는 아닙니다. 애초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불교 미술을 공부하거나 불경을 사료로서 공부한 적은 있지만, 불교 철학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기도 합니다. 제가 공부한 역사학과 철학은 인문학 안에서는 가장 거리가 있는 학문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또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긴 길 위에서, 그저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인 사람들입니다. 다만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뿐인 사람들이죠. 그 다음의 일은 굳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눈 앞의 정념을 떼어내는 데 모든 것을 바칠 뿐입니다.
왠지 잠시 곁을 내어주는 듯한 보리수 나무 근처에 앉아, 저도 잠시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가진 두려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오늘 하루의 이야기일 수도, 이번 여행의 이야기일 수도, 혹은 삶 전체를 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요.
다만 오늘까지도, 지난 2500여 년을 한 순간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을 수행자들의 긴 역사를 생각합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쯤은 저처럼 작고, 확신하지 못하고, 때로 비겁하지 않았을까 마음껏 상상해 봅니다.
종교에 발도 제대로 담가보지 못한 저는, 다만 그런 사실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이 긴 길이 이어졌다는 사실. 대가 없이 진리를 바라고, 더 옳고 바르고 평등한 것을 따라 걸어간 사람들이 한 시대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역사가 지금 제 눈 앞에서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불신자에게 성지란 별 의미 없는 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제겐 충분한 용기이고 힘이었습니다. 의탁할 신이 없는 저 역시, 성지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만큼은 어떤 두려움을 잠시나마 끊어낼 수 있었던 기분입니다.
-이메일로 받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