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정원

가난한 사랑의 노래/신경림

금종 2022. 12. 25. 08:42

가난한 사랑의 노래/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좋은 시 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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