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정원

세월 / 고재종

금종 2022. 12. 21. 08:37

세월 / 고재종

그러니까, 오뉴월 진초록 속을 뚫고

선홍 선홍 선홍빛 석류꽃 피는 일이

저토록 산뜻하고 해맑아서

새들도 꽃가지에서 꽃잎 따물고

저리 우수수 날아오른다면.

그러니까, 그 꽃그늘 새울음 아래

우리 가슴속 꽃 밝히고 새 날리며

우리 서로 얼굴 맞볼 때

네 맑은 눈동자 속에 내 얼굴 잦아들고

내 짙은 눈동자 속에 네 얼굴 젖어든다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윽고는

저기 청산이며 나무들이며 풀꽃들이며

대책없이 흔들어대는 쑥꾹새 울음에

뚜욱 뚜욱 뚜욱 석류꽃마저 지는 일이

단 하루라도 단 한시라도 늦춰만 진다면.

 

-좋은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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